지난 설에 같은 랩에 있는 두 분이 스트를 사셔서, 언제 같이 탄천 라이딩 나가자고 말한지 며칠 째. 드디어 디데이가 오늘로 잡혔다.
처음 탄천 라이딩 나가자고 할 때 일정은 간단했다. 나도 그렇고 새로 사신 분도 그렇고 한번 정비를 받아야 하니 쿠우님 샵에 들렸다가 점심먹고 분당 서울대 병원까지 한번 가볍게 돌아보는 정도의 코스. 나도 보통 미금까지 한바퀴 돌고 나면 지쳐서 헉헉대는터라, 처음 나가시는 분 한테는 좀 힘들것 같아서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한번 돌고 나야 나중에 같이 라이딩 코스 잡을 때도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하여간 그랬던 단순한 일정이, 뭐가 꼬인건지 아니면 날이 날이었는지 하루종일 풀 코스로 놀아버렸다.
1. 삐그덕 11시에 서현에서 만나기로 해서 느긋하게 10시 반쯤 집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나가려는 찰나 추어탕을 사오라는 엄마의 미션. 원래 먹자골목 쪽에서 200% 안전운전주의인데 신호위반, 과속, 택시 추월 드리프트 등등을 해서 7분만에 다녀옴. 그리고 시간 맞추느라 스트로 서현까지 완전 전력질주.
2. 옷차림 날이 며칠 따뜻하다가 하필 어제 비 오고 갑자기 추워져 장갑이랑 옷이랑 챙기는데, 마침 집에 있는 장갑이 보드용 두꺼운 장갑과 ex-bf한테서 받은 장갑 뿐이었다. 하다못해 동네 편의점에서 목장갑이라도 살까 했지만 그건 너무 꼴사나울 것 같아서 그냥 맨손으로 가는 바람에 거의 동상걸리기 직전까지 갔더랬다. ㅠ_ㅠ 또 넘어질까봐 버려도 되는 옷 대충 입었더니 엄마는 날 보고 거지패션이라고 하셨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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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지패션이라는 말 들어도 할말이 없긴 하다 (...)
3. 버프 얼마 전 스트동에서 버프 공동구매한 거 개시하려고 했는데 뜯고보니 오리지널 사이즈라 급 당황. 마스크로도 못 쓰고 그냥 목에 두르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손등에 감았다. 사실 마스크 하려고 목도리도 안 가져갔는데. 아무튼 손등에 감은 버프 한장에 완전 감사해 할 정도로 날이 추웠다는 거 ;ㅂ; 조만간 쿠우님 샵에 가서 주니어 사이즈 하나 새로 해야겠다. 사 놓은 건 아깝지만 ㅠ_ㅠ
4. 날씨 아니 게다가 날은 어찌나 춥고 또 바람도 어찌나 불던지, 바람이라도 안 불었으면 날도 개고 해서 따뜻하니 괜찮은 날씨였을텐데 미친 듯이 부는 강바람 때문에 스트 날아가는 줄 알았다. 원래 미니벨로가 바람에 영향을 좀 받긴 하지만 완전 맞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상황이라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안 날 때의 그 좌절이란 ㅠ_ㅠ 내가 왠만하면 날씨 별로 구애 안받고 즐기는 편인데 오늘은 나온지 10분만에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
5. 쿠우님 샵 close 그렇게 야탑에서 출발해서 서현에서 흰색 스트 타는 언니를 만나 같이 정자동 쿠우님 샵에 갔는데 샵이 CLOSE. 아니 요즘에는 토요일에는 장사를 안 하시는 건가!! 여기서 장갑이랑 마스크 구비해서 추위를 좀 막아볼까 하고 있던 나와, 악세서리 장착하려고 하던 그 언니는 완전히 허탈. 아, 그러니까 막 사냥 나가기 직전 추가장비랑 포션 구입하려고 상점에 들렸는데 그 상점 NPC가 오늘은 장사 안해요, 라고 해서 기본장비로 사냥 나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6. 점심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하니, 일단 정자동에서 인라인 타시는 Teo님 합류시켜 점심먹으러 갔다. Teo님은 밥부터 먹자는 말에, 운동하기로 하고 만난 거 아니었냐고 하면서 굉장히 당황해 했고 -원래 난 그냥 간단히 샌드위치 같은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이 추워 뭔가 국물이 있는 걸 찾다가 상당히 푸짐한 점심이 되고 만 그 상황에서- 오늘은 운동이 아니라 라이딩을 가장한 산책 수준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을 하면 더 실망할 것 같아서 그냥 말았다. 담에는 본격적으로 라이딩 가요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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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 먹어 치웠어요-_-;;
7. 어쨌든 다시 출발 밥 먹는 중에 늦게 출발한 검정 스트의 Leo 합류, 같이 점심 열심히 먹고 정자동에서 분당 안쪽으로 출발했는데, 대충 느긋하게 달리다보니 죽전 신세계까지 와버렸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고 하신 변태로이드님은 중간에 오늘 참석 못한다는 전화를 주셨다) 우와, 나 여기까지 온 거 처음이다. 근데 보통 때는 미금까지만 와도 지쳐서 헉헉대고 그랬는데 하나도 힘이 안들어서, 같이 라이딩을 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혼자 달리면 엄청 전력질주 하는 경향이 있더라. 오늘은 다른 사람들과 페이스를 맞추니까 슬슬 달려서 그렇게 힘이 안 들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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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중인 흰 스트와 검정 스트. 이거 직접 보면 뽀대가 장난 아니다 =ㅁ=b
8. 간식 죽전 뒤로는 길도 막혀 있고 해서 신세계 앞에서 턴해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이제 손이 차갑고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어길래 정자역에서 잠깐 휴식. 잠깐 몸 녹히려고 들어간 별다방에서 평소에는 쳐다도 안 볼 시그니쳐 핫초코에 볼케이노, 초코무스, 티라미스까지 엄청 먹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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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단 게 무지 땡길 때 먹어주는 볼케이노와 사준다는 말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나 -_-;;
세상에 볼케이노를 시그니처 핫초코랑 같이 주문하다니,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이건 보드 타다가 쉴 때 꼭 핫초코(마시맬로우 넣어서) 한 두잔씩 먹던 거랑 똑같은 상황이 아니던가. 열심히 소비한 칼로리를 한방에 max까지 채워버리는. 다시금 이번 라이딩의 목적은 '산책'이었다는 것을 (속으로만) 상기시킴. 그렇게 앉아서 몸 좀 녹히다가 영화보자는 얘기가 나와서 갑자기 예정을 급변경했다. 부모님이 오신다는 Leo만 서울 가고 원래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던 분까지 야탑으로 불러들여 영화보러 가기로 해서, 정자역에서 출발한 다음부터는 진짜 전력질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에서 내리니까 골반뼈가 막 뒤틀리는 것이... ;;
9. 틈새 부랴부랴 영화 예매하고 꼬질한 초롱이 목욕을 시키는데 중간에 드라이어가 과열로 나가버림. 찬 바람밖에 안나오는 또다른 고물 드라이어로 말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찬바람은 좀 무리였던 모양. 그냥 털 대충 말리고 이불에 꽁꽁 싸서 전기장판속에 디밀어버렸는데 콧물을 훌쩍이더라 ;;
10. 저녁 뭐 먹을지 좀 고민들을 했지만 결국 메생이 칼국수집. 안그래도 야탑에는 술집 위주인데 고기빼고 횟집빼고 스파게티 집 빼니까 진짜 먹을 집이 없더라고 ;_; 걷기가 싫어서 차 가져나갈 핑계 대느라 좀 먼 집(...)을 추천한 내막도 있긴 했지만. 암튼 다행히 다들 맛있다고 해서 다행인데 사실 나 점심 먹은 것도 안 내려간 상태에서 먹으려니 좀 힘들었다. 그렇게 저녁 먹고도 시간이 좀 남아서 율동공원 한바퀴 돌았다. 아아, 하긴 율동공원쪽을 자전거로 돌아도 괜찮겠구나 :)
11. 영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 공포물은 무척 약하지만 판타지 공포에, 판의 미로 감독이라고 해서 무척 보고 싶었던 거였다. 우훗. 게다가 Teo님이 제안한 저녁 사주기 뽑기에서 제비를 뽑아서 더 기뻤고. 내기에는 좀 약한데 가끔 아주 드물게 얻어먹기 내기에는 이길 때가 있더라. (그러고보면 전에 막강 김선임님한테도 내기 오목으로도 한번 얻어먹었....) 영화 자체는, 따로 포스팅하겠지만, 상당히 내 취향. 다만 울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12. 와플 그렇게 먹었는데도, 와플 먹자는 말에 출출해지다니 이 놈의 배는... ;ㅂ; 다시 정자동 와플가게로 이동해서 와플과 차 한잔. 정자동은,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완전히 허허벌판 모텔 투성이던 동네에 kins tower같은 회사 건물이나 각종 주상복합이 들어선 것도 그렇지만, 처음에 입주 시작할 때 참 조용하고 그랬던 동네가 카페거리로 유명세 타더니 무려 9시 반이 넘은 시간에도 도로 양쪽으로 차가 다 들어서 주차할 자리가 없을 지경이 되다니. 이건 결코 내가 주차하느라 좀 돌고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뭐랄까 그냥 그런 변화가 옛날 청담동 보는 느낌이라 좀. 근데 개인적으로 정자동 카페거리는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별로 정이 가는 동네도 아니고 왠만하면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곳이라 남들이 카페거리네 뭐네 하며, 어디가 괜찮은지 추천해달라고 해도 안내하기가 썩 내키는 곳은 아님. 그냥 뭐, 좀 껄끄럽다고. 하여간 개인적으로는 사실 밤 새서 더 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서울에서 오신 분의 막차 시간 때문에 슬슬 11시쯤 자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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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랄까, 적당히 놀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내 '적당히'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가보다. 이렇게 놀아제꼈는데도 또 놀고 싶구만. 원래 주말에 했어야 하는 일 하나도 못했는데 이를 어째. ;;
그래도 나름 간만에 나간 라이딩, 찬 바람 맞고 정신도 좀 들고 괜찮았다. 다음에는 인라인 가지고 나가봐야겠다. 확실히 힘은 좀 들어도 속도감은 인라인 쪽이 더 나은 듯. :)
+ 디카 가지고 몇장 찍기는 했는데 건질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카메라 가져간 다른 분들한테서 사진 받으면 추가하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