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정신없이 폭풍같은 주말을 보내고나니 벌써 내일 출근을 앞두고 자야할 시간.
하지만 왠지 그냥 잠들기는 아쉽다. 일요일밤은, 좀 그렇다.
1.
간만에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주말이었는데, 약속이 정신없이 더블로 막 잡힌데다 다 술약속이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그치만 정말 힘든 건 술 먹고 난 다음 날 새벽의 두통. 진짜 끔찍하다. 으으으윽. 덕분에 느낄 수 있어던 아스피린 한 알의 감사함이란.
2,
주변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고민을 좀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반은 농담이라는 건 알지만, 아직도 모 선배는 그쪽 회사 오라고 계속 컨택중이다. 아직 1년도 안된 애들 어디다 쓰시려고요, 라고 하고 있긴 하지만 나 하나만 생각한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다(笑).
3.
동기들이나 선후배처럼 한동안 한솥밥(?)먹고 뒹굴던 사람들을 만나면, 개별적인 친분이 거의 없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위기에 취해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그대들의 모습에서 내가 얼마나 위안을 얻는지 사람들은 아마 모르겠지.
4.
홍차쿠키나 호두정과(?)처럼 가게에서는 잘 팔지 않아 내가 해먹을 수 밖에 없는 간식들이 가끔 무지무지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한창 집안에서 분위기 험악했을 때 재료부터 도구까지 완전히 봉인당해 팔다리가 잘린 꼴이라 어찌할 수가 없고나. 가끔 게임이 너무 하고 싶으면 BGM이 환청으로 들릴 때가 있는데, 요즘은 호박파운드의 환후가 느껴진다.
5.
사람들은 남들에게 기본적으로 무관심하다. 근데 가끔은 무관심하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있게 되고, 또 놀라울 정도로 정곡을 찔러 주기도 한다. 어제 박완이 "그런 건 진짜로 사랑하지 않은 거야." 라고 했을 때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대충 7주 전에 모선배 한테도 똑같은 말을 들었더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말은 못하겠다고, 지금의 내가 당시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자. 계속 그렇게 자리합리화를 해야 숨통이라도 트일 거 같다.
6.
어디가 아프면 그냥 아픈가보다 하고 지내다가 쓰러진 다음에 병원 실려갈 정도로 둔한 인간인데 언제부턴가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예민해졌다. 가까운 사람이 비명횡사에 가깝게 죽은 탓도 있고, 집안 병력 탓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저 막연한 공포일 뿐. 그 중에 최근 2~3년 정도쯤 심해진 증상이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을 보면 얼마 안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섬찟해 하는 거다. 특히 친척집 같은 경우는 그게 '당연히' 더 심해서 저번에는 장례식에 가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고생했더랬다. 딱히 가위 눌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비합리적 신념은 대체 어디서 온 거냐.
근데 더 무서운 건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객관적인"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개별적인 두 존재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 둘을 전부 나 자신으로 느끼는 그 느낌. 꾸에에에엑.
7.
다음달이 산달인 친구가 동기모임에 나왔다. 사실 그 친구 핑계에 동기모임 한 거지만. 첫 임신치고는 그렇게 많이 부풀어 오르지 않은 배에 손을 대봤는데, 기대했던 태동이랄지, 아기의 발길질 같은 건 없었지만 초음파 사진으로는 전달되지 않던 무엇인가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정말 딱 한마디로 설명이 된다. 경이롭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