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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안녕

출근한 건 아니지만 집에서 뒹굴거리지를 못했더니 쉬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왠지 억울하다. 게다가 이틀 내내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지난주 G-star 다녀온 이후로는 야근도 안했는데 컨디션 회복이 영 더딘 것이, 역시 주말 이틀 내내 집에 박혀 있어야 충전이 되나보다.

전에 농담처럼, 이러다 반차나 휴가 한번 못 써보고 올 한해 끝나겠다고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 팀이나 랩이 휴가를 못내는 분위기는 아닌데 나 진짜 왜 이제까지 휴가 한번도 안썼나 모르겠다. 이러다 12월 초부터 일 다시 몰아치면 꼼짝도 못할텐데.

아까 Roy가 어깨 누를 때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왼손이라 힘이 안들어갔다고 하는데도 그 정도라니 어깨 심하게 굳어있는 모양이다. 가끔 목에서부터 찌릿하던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던 거구나 싶어 요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 관혼상제에서나 얼굴을 본다. 결혼식장에서 고등학교 동기들을 10년만에 만났다. 그런데도 그쪽도 내쪽도 서로 알아봤다. 그렇지만 역시 거기까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반가움은 상당히 표면적일 수 밖에 없다. 한때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그저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쉽다. 그렇지만 역시 그것보다는, 방어적인 태도를 먼저 취하게 될 정도로 나한테 때가 묻어버렸다는 것이 더 슬프다.

남자친구 여부를 묻는 인사에 남자나 내놔봐, 라고 농담으로 대꾸했더니 "바빠서 만날 시간이나 있겠어" 라는 말을 들었다. 아아, 그래. 지난주 동기 결혼식 & 동기모임 때 바쁘다고 안갔으니 그런 말 들어도 별 수 없나. 정말 왠만해서는 동기모임때 늦더라도 가지만 그때만은 회사에서 거의 1박 2일을 찍고 집에 기어들어갔을 때니 좀 봐주시지. 그래도 역시 결혼식은 고의적. 아직도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싫어하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아하는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깔끔하게 포기해버리는 태도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거다. 응, 친구들을 만나는 건 좋지만, 보고싶지 않은 껄끄러운 뭔가가 있었다. 뭔가가.

휴대폰 돌려받았다. 분실 공지도 비공개로 전환했음. 일주일 동안이나 보관 & 전달해 준 츠키양에게 감사. 휴대폰이 없으니 역시 젤 불편해하는 건 울 엄마. 나는 인터넷 뱅킹 못한다는 것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토요일날 DeView에서 휴대폰이 없어서 Me2 댓글놀이 참가 못하고 있을 때는 착불 퀵으로라도 보내달라고 할 걸 그랬다고 좀 후회했다.

주말도 그렇지만, 주중에 직접 상을 차려먹어야 할 때가 많다. 근데 퇴근시간이 늦다보니 정시퇴근하고 집에와서 상 차리면 아무리 빨라도 9시가 훌쩍 넘는다. 엄마가 저녁상을 차리는 경우도,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온 다음에 밥을 하시는 경우가 많아 그럴 땐 10시가 넘어서 저녁을 먹게 된다.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니 밥을 해놔도 안 먹을 때도 많고, 엄마가 나 밥상 차려주는 사람도 아니고 귀찮으시겠지-라고.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게 참 서운하다. 특히 배는 고파죽겠는데 냉장고 야채박스에 고추만 달랑 들어 있을 때,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쌀도 떨어진 경우는 이것 참 서러워서 원. 그러고보면 전에 모 차장님이랑 식사하다가 내가 밥 해먹는다고 하니 자기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 중에 자기가 차려먹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깜짝 놀라셨다. 그 때 나는 그 반응에 더 놀랐는데 어느쪽이 더 '평범'한 거냐. 아, 암튼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주말동안 싸돌아다니느라 장보러 못가서, 이번 주 뭐 해먹지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

음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누가 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요리 좋아한다고 소개하는 거 썩 내키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완전 질색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리 좋아한다는 오해를 여기저기서 받고 있는데 -나도 가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해먹을 때도 있지만- 절대다수의 빈도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거다. 그러니 뭔가 만들어 줄거라고 기대 받는 것, 게다가 그게 정기적인 것이 되면 음식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단 말이다. 

그래그래그래, 톡 까놓고 말해서 나 요리하는 거 싫고, 밥상차리는 거 싫다. 그래서 가끔 맛있는 거 해서 같이 먹는 건 좋지만 그것 때문에 상대방에게 농담으로라도 '나랑 같이 살자'라는 식의 말이 나온다면 같이 살면 뭐? 너 밥해주라고 같이 사니? 배고프면 니가 배워서 해먹으면 될거 아냐! 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그게 밖으로 튀어나오는지 안으로 삼켜지는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비록 상대방은 칭찬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리 과잉반응은 아니라고 본다.)

누누히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같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싫어하는 거라도 반복된 경험치가 쌓이면 스킬업한다. 잘 안된다고? 그건 아직 레벨업 하기에 경험치가 모자란 것 뿐이다. 잘한다고 꼭 좋아하라는 법은 없단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역은 종종 성립한다.)